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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 수의사가 알려주는 고기 이야기

채식한끼 2022. 3. 3. 17:50

 

안녕하세요, 저는 채식하는 수의사 류한빈입니다. 채식을 시작한지는 4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수의사인 제가 채식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잘 이해해 주는 편이예요. ‘저 사람은 수의사니까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니까 먹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는거겠죠?

 


하지만 저는 동물을 사랑하는 모두가 채식을 할 순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제 주위에는 제가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동물을 사랑하시고, 동물을 위해 희생하시는 훌륭한 분들이 많이 계세요.

저는 육식을 하는 것이 동물에 대한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보의 부족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즉 내 식탁 위에 올라오는 이 ‘음식'이 어디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산되는지를 어렴풋이는 알지만, 상세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의학과를 졸업한 저는 학교에서 생산 과정을 낱낱이 배웠기 때문에 더 쉽게 채식을 시작하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수의학과에서는 동물을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나눕니다. ‘반려동물', ‘야생동물', 그리고 ‘산업동물' 입니다. 언뜻 생각했을 때, 동물을 나누려면 ‘파충류' ‘포유류' ‘조류'...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게 합리적일 것 같지만 수의학과에서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반려동물, 야생동물, 산업동물은 치료의 목표와 범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죠.

 

반려동물을 치료하는 목적은 아시다시피 건강하고 고통 없는 삶을 보내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산업동물의 치료 목적은 오로지 생산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고기값보다 치료비가 비싸면 치료를 할 수 없는 것이죠. 또 돼지의 경우 새끼를 많이 낳게 하는 것, 산란계의 경우 계란을 많이 낳게 하는 것, 육우의 경우 살을 많이 찌우는 것 등이 목표가 됩니다. 이런 축산 분야에서의 수의학은 의학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경제성과 효율의 학문인 셈이죠.

 

 

이 쯤에서 퀴즈 한 번 풀어보시겠어요?

1. 소젖을 짜기 위해 사육하는 젖소는, 수컷 소에게서도 젖이 나온다 (O/X)
2. 젖소는 젖을 짜기 위해 개량된 품종으로, 임신하지 않아도 젖이 항상 나온다 (O/X)

 

알고 보면 정말 쉽고 당연한 문제인데도, 많은 분들이 이 질문을 들으면 고민하시고 또 답변이 많이 갈립니다. 네, 정답은 당연히 둘 다 X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젖소도 임신한 암컷에서만 젖이 나옵니다. 젖소는 젖을 생산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임신하거나 수유 상태인 채로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photo created by jcomp - freepik

제 주위의 수의학이나 축산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틀린 답을 하거나 최소한 고민을 합니다. 매일 라떼를 마시고, 유제품을 먹으면서 우리는 이렇게나 생산 과정에 대해 무지합니다. 일반인들이 축산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게 된 사건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뉴스입니다.

 

살아있는 소의 옆구리에 위로 이어지는 구멍을 뚫어놓고 잔인한 생체 실험을 한다는 뉴스인데,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전세계인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 뉴스에서는 마치 해당 회사에서만 연구 목적으로 잔인한 학대를 자행한다는 식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해당 뉴스의 댓글도 해당 회사를 비난하고, 다시는 이런 학대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잔인하다, 천벌받아야 한다는 의견들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저와 제 주변의 수의사 동기들은 이 뉴스에 대해 ‘새삼스럽다' 는 반응이었습니다. 소 사육 환경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소들은 고질적으로 고창증이라는 병에 시달립니다. 쉽게 말해 소화 불량의 일종인데, 음식물을 소화하면서 생기는 가스로 위가 비정상적으로 팽창하는 것입니다. 소화 불량이라고 하면 심각하지 않게 느껴지시겠지만 급성 고창증의 경우 소가 수 시간 내로 급사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인 질환입니다. 많은 농장에서 그만큼 심각하게 다루는 질병입니다.

 

고창증은 왜 생길까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가장 흔한 요인은, 소를 빠르게 살찌우거나 우유를 많이 얻기 위해 농후 사료를 많이 급여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소는 보통 풀을 먹고 삽니다. 하지만 건초만 먹여서 경제적이고 빠르게 소를 살찌우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단백질과 지방 밀도가 높은 농후사료를 섞여 먹입니다. 하지만 이런 농후사료는 자연스러운 소의 식습관과 거리가 멀기에, 고창증과 같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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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증으로 소의 위가 풍선처럼 부풀었을 때, 소의 입으로 위까지 호스를 집어넣어 가스를 빼내거나, 위 천자*를 해서 가스를 빼 주어야 합니다. 위를 고정하는 수술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만성으로 고창증을 자주 일으키는 소의 경우 매번 이런 시술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아예 위를 열 수 있는 ‘뚜껑'을 달아 버립니다. 고창증을 해소하기도 쉽고, 사료의 소화 과정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겠죠.

 

천자란 인체에 침을 찔러서, 체내로부터 액체 또는 세포나 조직을 채취하는 것입니다. (서울아산병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굳이 알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농장에서 풀을 먹고 자란 소가 도축되어서 우리 식탁으로 온다는 정도의 어렴풋한 지식만 가지고 살아가도 됩니다. 그 이외의 세부적인 일들을 나 대신 처리해 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매일 우유가 들어간 라떼를 마셔도, 이 젖을 암컷 소에게서 짜는지 수컷 소에게서 짜는지, 더 많은 우유를 짜기 위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내가 직접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제 주변에는 저와 같은 수의사인 비건 친구, 그리고 공장식 축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채식을 시작했다는 비건 지인들이 많습니다. 동물성 식품들의 생산 과정을 자세히 알고 나서부터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죠. 어쩌면 채식과 육식을 하는 사람의 차이는 동물에 대한 애정도 차이, 윤리의식의 차이가 아니라 지식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르면 먹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몰라도 될 권리가 있을까요?

 

* 본 글 내용은 외부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 채식한끼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 - 류한빈

채식하는 수의사
낮에는 동물을 치료하고 밤에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 다루었으면 하는 콘텐츠가 있거나 직접 콘텐츠 제작자로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채식한끼로 연락 주세요. (hello@beyondnex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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