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즐거움에 고통 받는 동물들

안녕하세요. 지난번 기고한 ‘수의사가 말하는 고기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수의사라는 직업은 동물과 늘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일이다 보니, 채식과 직접 관련된 축산업 관련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동물이 주인공인 여러 가지 일들을 가까이서 접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제가 수의사로 일하면서 겪은 다양한 동물 이야기, 그리고 동물복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은 동물병원에서 겪은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제가 2년 차 수의사였을 때의 일입니다. 키가 크고 양복을 차려입은 40대 초반 남자 보호자가 내원하셨습니다. 혈액 검사를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보호자님은 혈액 검사, 그중에서도 ‘바베시아’를 검사하고 싶다고 콕 집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꼴로 그 보호자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데리고 오시는 환자는 모두 핏불테리어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바베시아 검사를 요청하셨습니다.

바베시아는 진드기가 옮기는 전염병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말라리아와 증상이 비슷합니다. 열이 나고, 근육통이 심하고, 심한 경우 피오줌을 누다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진드기가 옮기는 심각한 질병들이 많이 있지만, 바베시아의 경우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는 매우 흔한 병은 아니었습니다.
보호자님이 진드기 예방을 꾸준히 하고 계신데도 바베시아 검사를 자주 요청하시기에 의아하게 여겨 여쭤보았더니, 보호자님은 그제야 데리고 내원하는 강아지들이 투견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모든 궁금증이 해결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데리고 오는 모든 환자가 핏불테리어 종이었던 것도, 진드기 예방을 하고 계심에도 바베시아 검사를 꼬박꼬박 받는 것도요.
핏불테리어는 투견으로 인기가 있는 종입니다. 잘 싸우는 ‘좋은’ 품종은 외국의 브리더로부터 비싼 가격에 거래됩니다. (분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겠습니다. 맥락상 ‘거래’가 더 정확합니다)
바베시아는 국내에서는 자주 보이는 질환은 아니지만, 해외의 몇몇 국가에서는 꽤 흔한 병입니다. 그리고 바베시아가 감염되는 경로는 진드기 말고도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교상입니다.
바베시아에 감염된 개에게 물리면 건강하던 개도 바베시아에 감염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투견이 경기를 마친 후에는 항상 바베시아 검사를 받으러 오신 것입니다. 해외에서 수입해 온 다른 투견들이 바베시아에 감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고, 싸우는 도중 서로 물고 물리며 전염될 수 있기 때문이죠.

데리고 오시는 환자가 투견이라는 것을 들은 제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보호자님은 황급히 설명을 시작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잔혹한 환경에서 투견들을 키우지 않는다고요.
“나는 우리 선수들을 투견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스포츠 선수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스포츠 선수처럼 훈련도 하고, 훈련이 없는 시간에는 충분히 휴식하게 합니다. 매일 닭백숙도 고아 먹이고, 황토방에서 여름엔 에어컨 쏘이며 살아요. 시간 되면 우리 농장에 한번 놀러 오세요. 너무 좋아서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저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보호자님은 저희 병원에 내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 다른 동물병원을 찾아가셨겠지요?
넓은 의미에서의 ‘비거니즘’은 동물로부터 유래한 식품을 먹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을 착취하는 모든 행동을 줄이려는 노력입니다.
가죽 제품을 사용하지 않거나, 동물 실험을 거친 화장품을 쓰지 않는 것 등입니다.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모두가 엄격하게 모든 동물 유래 제품을 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동물 유래 식품은 전혀 먹지 않지만, 가죽으로 만든 지갑을 들고 다니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요. 비거니즘은 강요가 아닌 선택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완벽한 비건’으로 살기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부분은 있습니다.
저는 동물 카페, 경마장, 낚시 카페 등 동물을 전시하거나 오락 목적으로 소비하는 곳에는 가지 않습니다. 다른 생명의 고통을 눈앞에서 보고, 즐기고, 돈을 걸며 쾌락을 느끼는 유흥 문화에 일조하기 힘들었습니다.

투견은 어릴 때 귀와 꼬리를 작게 자릅니다. 귀와 꼬리 같은 말단 부위는 물어 뜯기기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소싸움은 합법이며 1), 심지어 전통문화처럼 보존되고 있습니다. 낚시 카페에서는 물살이들을 낚았다가 무게를 재고 다시 수족관에 넣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개도, 소도, 말도, 누군가에게 학대당하며 훈련받고, 다른 동물과 싸우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1) 동물보호법 제 8조 3항, 전통 소싸움경기에 관한 법률 제 4조 1항
남의 아픔에 백 퍼센트 공감하기란 참 힘듭니다. 누군가는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절절하게 공감하며 함께 눈물 흘리기도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남의 아픔을 무심하게 스칩니다. 공감 능력이 곧 개인의 윤리 의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칼럼에서 썼듯이, 채식을 하는 것이 곧 동물에 대한 사랑의 척도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내 일과 같이 공감하진 않더라도, 적어도, 남의 고통을 나의 유흥거리로 소비하는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한번 더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는 이를 달래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우는 이를 보며 즐기지는 않아야 하지 않을까요?
* 본 글 내용은 외부 필자의 개인 의견으로, 채식한끼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가 소개 - 류한빈
채식하는 수의사
낮에는 동물을 치료하고 밤에는 콘텐츠를 만듭니다.
* 다루었으면 하는 콘텐츠가 있거나 직접 콘텐츠 제작자로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채식한끼로 연락 주세요. (hello@beyondnext.net)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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